신라 제 7대 일성왕은 제 3대 유리왕(儒理王)의 큰아들인데 유리왕이 유언(遺言)으로 

현명(賢明)한 사람으로 왕을 삼으라고 한 뜻에 따라 왕위를 이어 받지 못하고 석탈해(昔脫解)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적장자(嫡長子)를 왕으로 삼는 법으로 한다면 당연히 일성왕이 왕위를 이어 받아야 되었겠지만 부왕(父王)의 유언에 따라 석탈해가 왕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서기 134년에 90세의 고령(高齡)으로 조카인 제 6대 지마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북쪽의 말갈(靺鞨)이 계속해서 침입(侵入)해 오는 것을 잘 막아냈으며 또 각 주(州)에 명하여 제방(堤防)을 고치게 하여 

농사짓기에 편리하게 하였고 황무지(荒蕪地)를 개간(開墾)하여 농토(農土)를 늘리도록 하였다.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금(金)이나 은(銀) 또는 옥(玉)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사치(奢侈)를 금(禁)했다.

재위(在位) 20년만인 서기 153년에 돌아가셨는데 무려 111살을 사셨다.

도성(都城)의 남쪽 장전동(지금의 경주시 탑정동)에 장사 지냈다.

역사를 살펴보면 유리왕의 둘째 아들인 파사왕이 탈해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파사왕의 아들인 지마왕이 다시 왕위를 이었다가 백부인 일성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90세의 나이로 왕이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며 

90세의 극노인인 일성왕이 20년이나 나라를 다스리면서 선정(善政)을 베푼 것을 보면 현대(現代)에 사는 후손들로서도 존경(尊敬)스러울 뿐이다. 

제향일(祭享日)은 매년 추분(秋分)이다.